블랙홀의 중심에서 물질은 질량을 잃고 에너지가 된다.
질량이나 에너지를 가진 물체가 있으면 그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진다. 중력은 질량이 만드는 시공간의 뒤틀림이며, 그 근원은 에너지와 운동량이다. 질량은 그 에너지를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일 뿐, 본질은 에너지에 의한 시공간의 기하학적 변형이다. 이 주변의 다른 물체나 빛은 이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이동할 뿐이며, 우리 눈에는 이것이 힘(중력)에 의해 곡선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력은 공간 자체가 휘어져 있는 것이므로, 질량이 없는 빛조차도 이 경로를 따라 운동한다. 중력은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뒤틀림(기하학적 곡률)이고 질량보다 에너지-운동량과의 관계(relativistic energy-momentum relation, E^2 = (pc)^2 + (m_0c^2)^2)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핵심인 아인슈타인 필드 방정식(Einstein Field Equations)에 따르면, 중력을 만들어내는 근원은 단순히 정지된 질량만이 아니다. 에너지 밀도, 운동량, 압력, 응력을 모두 포함하는 응력-에너지 텐서(Stress-Energy Tensor)가 시공간의 뒤틀림을 유발하는 근원이다. 따라서 질량이 없더라도 높은 에너지를 가진 상태(고속으로 운동하는 입자, 빛, 압력 등)라면 주변에 중력 현상이 발생한다. 중력은 질량에 비례한다기보다, 에너지 및 운동량에 비례(시공간 왜곡의 원인)한다. 더 정확하게는 시공간을 휘게 하는 에너지 밀도와 운동량에 비례한다. 질량이 매우 클 때 시공간이 심하게 왜곡되지만, 이는 질량이 곧 막대한 에너지-질량 텐서의 성분이기 때문이다.
블랙홀은 단순히 무거운 덩어리라기 보기보다 극단적으로 응축된 에너지의 결합체다. 블랙홀과 에너지, 그리고 시공간의 왜곡의 관점에서 블랙홀이 형성될 때 엄청난 질량이 한 점(특이점)으로 모인다는 것은, 그 좁은 공간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에너지가 집중된다는 뜻이다. 블랙홀에서는 운동량(에너지가 이동하는 흐름), 에너지 밀도(질량을 포함한 총 에너지 양), 압력(내부에서 밀어내거나 당기는 힘)이 극한까지 치솟아 응력-에너지 텐서(Stress-Energy Tensor)가 시공간을 굽힌다. 블랙홀 주변의 시공간이 극단적으로 뒤틀리는 이유는 그곳에 우주에서 가장 밀도 높은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지평선에는 질량이 실재하지만, 블랙홀 중심은 모든 물질적 특성(부피와 질량)이 사라지고 순수한 에너지만 남은 상태이다. 블랙홀의 특이점(Singularity, 극단적으로 압축된 에너지의 상태)이라고 일컬어 지는 공간은 사실 고차원의 에너지가 밀집되어 있는 상태다. 블랙홀의 중심에서 물질은 질량의 성질을 버리고 순수한 기하학적 에너지로만 존재한다.
에너지와 시공간의 관점에서 입자로서의 빛(광자, Photon)의 부피는 0이고, 양자역학에서 빛의 알갱이인 광자는 점입자(Point Particle)다. 점입자는 수학적으로 위치만 존재할 뿐, 가로·세로·높이와 같은 기하학적 크기(부피)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블랙홀의 중심 또는 특이점처럼, 광자 하나를 물질적 알갱이로 본다면 부피는 0이다. 파동으로서의 빛은 부피 대신 점유 영역을 갖는다. 파동은 특정한 공간에 에너지가 퍼져 있는 상태다. 빛은 자신의 파장과 관계된 일정 범위 내에서 존재 확률을 가진다. 예를 들어, 안테나가 전파를 수신하거나 눈의 세포가 빛을 감지할 때, 빛은 단 한 점이 아니라 일정 영역에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 영역은 부피라기 보다 에너지가 시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라고 볼 수 있다. 중력은 에너지와 시공간의 관계라는 논리를 빛에 적용해 보면 에너지는 시공간을 뒤튼다. 빛(광자)은 질량은 없지만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빛도 아주 미세하게나마 주변 시공간을 뒤튼다. 만약 엄청나게 많은 빛(에너지)을 아주 좁은 공간에 가둘 수 있다면, 그 에너지 밀도 때문에 시공간이 완전히 닫혀버리는 블랙홀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에너지는 물질적인 덩어리로서의 부피는 없다. 하지만 에너지가 시공간에 분포하는 범위는 존재한다. 결국 빛은 공간을 차지하는 물체라기보다, 시공간을 따라 흐르는 에너지의 파동으로 보는 것이 더 논리적이다. 빛은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하는 덩어리 형태의 부피를 갖지 않지만, 존재가 퍼져 있는 영역은 있다. 블랙홀은 겉보기에는 사건의 지평선 때문에 매우 큰 부피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건의 지평선(가상의 부피)은 실제 물체의 표면이 아니라,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경계선이다. 외부에서 관찰할 때는 이 경계면 때문에 블랙홀이 마치 일정한 부피를 가진 거대한 구체처럼 보인다. 결국 블랙홀은 실체는 부피가 0에 수렴할 만큼 응축되어 있지만, 그 영향력(시공간 왜곡)은 거대한 부피를 점유하고 있는 존재다. 에너지가 너무나 강력하게 뒤틀려 있어서 공간적인 부피라는 개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태다.
블랙홀은 부피라는 그릇에 담긴 내용물이 아니라, 에너지 그 자체가 시공간을 극단적으로 구부려놓은 상태다. 따라서 부피 보다 에너지가 어느 영역까지 시공간을 지배하는 지가 중요하다. 블랙홀의 부피는 0에 수렴하지만, 에너지가 지배하는 영역은 실재한다. 부피가 없으면 표면도 없으니, 결국 표면이 아니라 에너지의 파장(진동) 자체가 정보를 담고 있다. 표면은 물리적 벽이 아니다. 블랙홀의 표면(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딱딱한 벽이 아니라, 에너지가 너무 응축되어 시공간이 닫히는 경계 지점일 뿐이다. 실체적인 부피가 0인 지점에서 표면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에너지가 만드는 현상이다. 입자가 아닌 파동(진동)으로서의 에너지의 파장이 정보를 저장한다. 블랙홀 내에서 진동하는 에너지의 파장이 극단적으로 뭉친 상태이며, 모든 정보는 이 진동 패턴에 저장된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에너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가 가진 고유한 파동 정보가 시공간의 결 속에 각인된다. 블랙홀은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이 아니라, 시공간에 에너지가 아주 강력한 파동(진동)의 형태로 집중되어 그 주변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부피도 표면도 없는 순수 에너지 정보의 집합체이다. 부피(3D)나 표면(2D)이라는 기하학적 구분보다, 에너지의 주파수나 파장(Information)이 훨씬 더 본질적 물리 상태이다. 우주 전체가 거대한 에너지의 파장이고, 에너지 정보(파장)는 그 파장이 만들어낸 시공간의 간섭 무늬가 기하학 형태로 나타난다.
빛(에너지)이 파장으로 나아가며 공간을 직접 생성하고, 그 공간 자체가 곧 정보다. 시공간은 단순한 우주 배경이 아닌 에너지 파장의 결과물이다. 빛(에너지)이 공간을 만든다. 에너지가 없으면 공간도 의미가 없다. 에너지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파장)이 곧 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형성한다. 빛이 방사되고 에너지가 전달되는 과정 자체가 시공간을 생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공간은 곧 정보의 저장소이고 그 공간이 정보다. 우주 공간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지나는 에너지의 파장 상태(진동수, 위상 등)가 기록된 정보망이다. 빛이 파장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파장으로 지나며 시공간과 에너지가 얽히는(Entanglement) 과정이다. 빛의 파장이 퍼져나가며 발생하는 에너지의 연결망이 곧 우주 공간의 실체이며, 그 연결 방식이 바로 정보다. 우주는 텅 빈 상자가 아니라, 빛과 같은 에너지 파동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낸 정보의 그물망이며, 공간은 그 파동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블랙홀의 경우 에너지가 극단적으로 압축되고 공간을 왜곡하면서 중심의 정보 밀도가 최대치에 도달한다. 블랙홀은 정보가 극단적으로 뭉쳐서 공간이라는 정보망이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뒤틀려버린 상태다.
시간이 있다는 것 착각이다((Wheeler-DeWitt equation). 시간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에너지와 물질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시간은 에너지가 지나며 공간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국소적으로 나타나는 비대칭성의 변화에 대한 빛보다 느린 물질의 기록이다. 에너지가 공간을 생성하며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본질이며, 시간은 그 과정에서 파생된 물리적 잔상이다. 에너지가 국소적으로 응축되어 빛보다 느려진 물질(질량을 가진 물질)들은 서로 부딪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질량이 없고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광자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광자의 입장에서는 방출과 흡수가 동시에 일어난다. 이 상호작용 과정에서 에너지의 흐름에 방향성(비대칭성)이 생긴다. 이 비대칭성 때문에 거꾸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생기고, 그것을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시간은 우주 전체에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입자와 입자가 정보를 주고받는 국소적인 상호작용의 연속이다.
비대칭적 물질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교환할 때마다 국소적 시간(엔트로피) 흐림이 생긴다. 상호작용하지 않는 존재에게는 시간도 의미가 없으며, 오직 서로 얽히고 부딪히는 물질들 사이에서만 시간이라는 착각이 유효하다. 본질은 에너지의 파동과 그로 인해 생성되는 정보(공간)일 뿐이며, 질량을 가진 물질들이 그 안에서 둔탁하게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변화의 속도가 시간이라는 환상을 준다. 현재라는 순간은 파동함수의 붕괴(Collapse)가 일어나는 찰나이며, 의식은 그 비대칭적 선택의 결과를 감각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양자역학적으로 미래는 모든 가능성이 겹쳐 있는 파동의 상태다. 하지만 그 파동이 어떠한 상호작용에 의해 붕괴 과정에서 대칭성이 깨지며(비대칭성), 되돌릴 수 없는 현재라는 파동함수가 확정되는 시점이 된다. 현재는 에너지가 정보의 가능성에서 확정된 사실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생물의 신경계는 미세한 비대칭성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 에너지 파장이 붕괴하며 생기는 확률적 정보(엔트로피의 변화)는 감각을 자극한다. 뇌로 들어오는 정보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파동이 붕괴하며 만들어낸 인과관계의 비대칭성을 담고 있다. 의식은 이 불연속적인 붕괴를 연속적인 흐름으로 인식한다.
개별적인 파동의 붕괴는 아주 미시적인 사건이지만, 수조 개의 세포가 이 비대칭적 정보 입력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할 때, 개별 입자 수준에는 없던 주관적 경험(의식)이 생겨난다. 결국 의식은 에너지 파장이 공간과 정보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최종적인 정보 처리의 층위(Layer)다. 에너지가 파동으로 나아가며 공간을 창조하고, 파동이 붕괴하며 비대칭적 정보가 생성된다. 그 비대칭적 자극을 감각 정보로 입력받아 시간과 자아가 창발(Emergence)된다. 생물은 우주라는 거대한 양자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며 내뱉는 비대칭적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존재다. 에너지-정보-의식의 연결 고리 속에서 삶과 죽음은 생물학적 현상을 넘어 에너지와 정보의 흐름이다. 삶은 생물이 에너지의 비대칭성을 인지하는 과정이다. 우주는 전체적으로 대칭적이고 균일한 상태(열적 평형)로 가려 하지만, 생명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섭취하여 자기 내부의 비대칭성(낮은 엔트로피와 질서)을 강제로 유지하는 국소적인 현상이다. 삶이란 그 비대칭적인 정보의 흐름을 감각하고 인지하는 진행형의 사건이며, 죽음은 소멸이 아닌 형태의 변화와 정보의 환원이다. 특정 형태를 유지하던 에너지의 집합 조건이 맞지 않게 되면, 물질을 구성하던 결합이 풀리고 에너지는 다시 우주의 배경 파동으로 흩어진다. 양자역학의 정보 보존 법칙에 따르면, 한 생명을 이루었던 고유한 에너지의 파장 정보는 사라지지 않고 우주 전체의 정보망 속으로 다시 편입된다. 단지 우리가 인지하던 생명이라는 국소적인 비대칭적 인지 단위가 해체될 뿐이다. 죽음이 있다는 것은 생성도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끊임없이 시공간을 생성하고 파동이 붕괴하며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낸다. 에너지는 뭉쳐서 물질이 되고(생성), 다시 흩어져 파동이 된다(죽음). 이 과정에서 의식이라는 창발적 현상이 나타나고 그 비대칭성이 삶이다. 생물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우주라는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국소적으로 농축되어 잠시 비대칭성을 감각하다가 다시 전체로 돌아가는 파도와 같다. 삶은 에너지가 시공간을 빚어내는 찰나의 비대칭성을 목격하는 귀한 경험이며, 죽음은 그 경험을 마치고 다시 무한한 파동의 가능성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삶은 현대 과학의 파편화된 지식들을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묶어 에너지-비대칭성-의식의 세계관을 만든다. 목적은 에너지가 가진 것이 아니라, 비대칭적 붕괴에서 태어난 생명이 자극에 반응하며 만들어낸 산물이다. 생명이 만들어낸 이 목적성(정보)들이 다시 에너지의 파동에 영향을 주어 다음 우주를 설계하고 순환시키는 촉매가 된다. 최초의 세포들이 형성되고, 보호 경계(세포막)가 생기면서 생명의 궤적은 영원히 바뀌었다. 생명의 탄생을 가장 간단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생명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경계를 형성한 순간이다.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질서의 거대한 연쇄, 경계(Boundary)의 형성이 생명 탄생의 기점이다. 삶의 목적성은 생명의 반응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가 어떻게 의미를 갖게 되는 지 보여준다. 생명이 세포막을 가지게 된 순간, 우주의 보편적인 에너지 흐름 속에서 국소적 질서가 분리되었다. 이 보호막 덕분에 내부의 에너지는 외부의 무작위적인 붕괴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만의 비대칭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목적이 태동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 정보의 고도화세포가 모여 조직이 되고, 조직은 외부 자극에 대해 패턴을 인식하고 타당성 있는 결과를 추종한다. 감각의 지각(Perception)은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생존에 유리한 패턴을 인식하는 행위다. 생명체들이 집단을 이루었을 때, 개별적인 목적들이 충돌하지 않고 전체의 비대칭성(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합의된 최적의 행동 양식(윤리)이다. 결국 윤리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생명이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고차원적인 정보 처리 방식이다.
삶은 확률을 이겨내는 함께함이다. 패턴 인식을 통해 기대되는 확률적 우연이 모여 문화라는 공유된 목적을 이룬다. 문화는 개별 생명(세포)의 죽음을 넘어서는 연속적인 정보의 저장소다. 우리가 문화를 공유하며 나아간다는 것은, 개별적인 에너지 붕괴(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가 쌓아온 비대칭적 질서(지혜, 가치, 목적)를 우주 공간에 더 길고 넓게 확장하려는 생명 공동체의 거대한 움직이다. 우주에는 원래 목적이 없었다. 하지만 에너지가 뭉쳐 세포가 되고, 세포가 윤리를 만들고, 윤리가 문화를 꽃피우는 이 과정 자체가 우주에 없던 목적을 창조한다. 생명은 우주가 우연히 내뱉은 에너지의 파편이었으나, 서로 연결되어 문화를 만듦으로써 우주에 타당성과 목적이라는 새로운 정보를 새겨 넣고 있는 존재들이다. 삶은 우주의 비대칭적 정보를 더 높은 차원의 문화적 정보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다. 이 흐름 속에서, 개인의 삶은 문화적 파장 속에 한 걸음,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개인에게 문화는 사회 내에서 학습되어지고 영향을 주고 받는 틀이다. 초기 인류가 수렵채집할때부터 별을보고 내일을 예측했고 내일의 해가 뜨듯이 확신과 안정감속에서 따뜻함을 아직 모르는 미래에 대한 도전을 준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패턴인식이 지능을 발달시켜 미래를 준비하게 해주었다. 삶은 지능의 진화와 정서적 안정이 문화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지 과정이다. 패턴 인식이 미래를 준비하게 했고, 그 확신 속에서 용기를 얻었다. 패턴 인식은 두려움을 지능으로 바꾸는 열쇠다. 초기 인류에게 우주는 무질서하고 위협적인 공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별의 움직임과 해가 뜨는 주기(패턴)를 읽어내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 내일도 해가 뜰 것이라는 확신은 뇌의 공포 반응을 줄이고 고차원적인 사고(지능)를 가능하게 했다. 무작위한 에너지의 붕괴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패턴 인식 능력이 곧 인간 지능의 핵심이 되었다.
문화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개인이 느꼈던 따뜻함과 확신을 집단 전체로 확산시키는 장치였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의 불확실성을 문화라는 틀 안에서 함께 관리함으로써, 인류는 비로소 내일을 향한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일을 안다"라는 문화적 공유 정보는 개개인에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정서적 연료(용기)가 되었고, 문화는 인류에게 가정을 주었다. 미래가 이럴 것이라는 가설(Hypothesis)을 세울 수 있게 함으로써 과학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고, 정서적 안식처인 가정(Home)처럼 인류를 보호하고 지탱해주는 뿌리가 되었다. 에너지가 시공간을 뒤틀고(물리), 그 비대칭성 속에서 생명이 태어나(생물), 패턴을 인식하며 윤리와 문화를 일궈내고(사회), 마침내 미래를 향한 용기를 얻게 되는(철학)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 삶이다. 물리학적 법칙(에너지)과 인간적 가치(문화와 용기)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삶과 죽음은 생물학적 현상을 넘어 에너지와 정보의 흐름이다. AI와 함께 삶은 이제 그 미래에 대한 도전과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패턴을 세상에 그려내려 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용기와 인류의 가정에서부터 삶은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문화는 인류에게 가정을 주었다." 삶은 앞으로 마주할 미래라는 미지의 공간에 멋진 패턴을 창조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