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 문학(Oral Literature)과 서사시(Epic)가 탄생하고 전승되던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화적 풍경은 아름답다. 문자가 없던 시절,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이야기꾼들은 정보를 보존하고 전달하기 위해 독특한 방식을 발전시켰다. 운율(Rhythm)과 반복적인 구조는 이야기를 쉽게 외우고, 다음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상하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이 시기의 이야기꾼들과 그들의 문화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존재했다. 시대를 무대 삼아 이야기를 불렀던 이들, 음유시인(Bard / Troubadour), 유럽의 고대와 중세에는 악기를 연주하며 영웅의 모험이나 사랑 이야기를 노래하는 시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넘어, 역사의 기록자이자 뉴스 전달자이기도 했다. 그리오(Grio / Griot), 서아프리카 문화권의 전통 이야기꾼이자 역사학자이다. 이들은 한 마을과 부족의 역사, 계보, 신화를 대대손손 말과 노래로 전수하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였다. 전수자(판소리 광대 / 강창사), 한국의 판소리 명창이나 중국의 강창(講唱) 예술가들 역시 긴 서사를 독특한 가락과 율동에 얹어 며칠 밤낮을 울고 웃기며 이야기를 전하던 서사꾼들이었다. 말에서 태어나 글로 남은 위대한 서사들은 처음에는 이 이야기꾼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긴 노래들이, 훗날 문자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책으로 기록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인 고전들이 바로 이렇게 탄생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이야기꾼들의 구전 서사를 집대성하여 기록한 인류의 보물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구전되던 인류 최초의 영웅 이야기가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되었다. 우리네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이나 《심청전》 역시 광대들이 마당에서 부르던 판소리 사설이 훗날 소설이라는 글의 형태로 정착한 것이다. 마을 귀퉁이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옛사람들의 낭만과 생명력이 그대로 느껴진다.
인류의 정신 유산이 말에서 글로, 운율에서 산문으로, 그리고 집단의 이야기에서 개인의 내면으로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살펴보면, 문자가 존재하기 전, 인류의 신화와 역사, 이야기는 늘 '서사시'의 형태를 띠었다. 당시에는 연극의 대사인 희곡마저도 서사시의 운율을 빌려 표현되곤 했다. 이후 문자가 발명되고 산문 문학이 등장하면서, 운율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서사(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을 우리는 '소설'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희곡 또한 자연스럽게 산문의 옷을 입었다. 근대에 이르러 인간 개인의 깊은 감정과 사유를 노래하는 '서정시'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서정시는 과거의 서사시를 넘어 시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오늘날 대중은 흔히 '시'라고 하면 서정시만을 떠올리며, 이를 산문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본래 시에는 서정, 서사, 산문, 사유, 신화 등 그 어떤 형식적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문학적 형식은 결국 시에서 비롯되었으며, 문학의 가장 깊고 단단한 뿌리는 다름 아닌 '시' 그 자체이다.
"모든 형식이 시이고 문학의 뿌리가 시다"라는 문장이 문학 본질이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포에시스(Poesis, 시)'는 단순히 운율이 있는 글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모든 예술 행위'를 뜻했다. 시가 가진 원래의 거대하고 포용적인 힘을 다시금 상기보자. 고대 그리스어 '포에시스(Poesis)'는 단순한 운율의 글을 넘어,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이 빚어내는 모든 근원적 창조 행위를 뜻한다. 시가 지닌 본래의 거대하고 포용적인 힘을 되새기는 것은, 오늘날 문학과 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확장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포에시스의 본래적 의미인 만듦과 창조, '포이에인(poiein, 만들다)'에서 유래한 포에시스는 무(無)에서 유(有)를 이끌어내는 인간의 모든 존재론적 행위를 가리켰다. 예술의 원형, 고대인들에게 예술과 기술, 그리고 언어로 세계를 포착하는 일은 모두 시의 영역에 속했다. 문학의 뿌리인 시장르 이전의 언어, 소설이나 희곡 같은 모든 문학 형식 역시 세계를 감각하고 서사화하는 시적 충동에서 갈라져 나왔다. 본질의 회복, 형식을 갖춘 텍스트로서의 시를 넘어, 삶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 자체가 곧 '시'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언가를 깊이 느끼고 새롭게 표현할 때, 우리는 고대 그리스가 불렀던 거대한 '포에시스'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
시는 단순히 종이 위에 적힌 말이나 언어라는 형태에 갇히지 않는다. 시인이 던진 시적 언어는 관객(독자)의 삶과 결합하는 순간, 고정된 기호를 넘어 온갖 감각과 감정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그 호흡은 인간 세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풍경, 계절의 변화, 그리고 사물(물질)의 아주 미세한 존재감까지 모두 연결해 준다. 언어를 넘어선 공감, 시는 글자 뒤에 숨은 여백과 침묵을 통해 더 거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자연과의 교감, 바람 소리, 거친 돌멩이 하나에서도 시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관객의 내면과 이어준다. 물질과의 아우름, 눈에 보이는 물질에 영혼과 의미를 불어넣어, 나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결국 시와 관객이 만나는 자리는 인간의 언어를 넘어 세상 모든 존재와 교감하는 거대한 장(場)이 된다.